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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형 펀드메니저 박헌주, 세계 경제 모멘텀
서구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전환

 

 

미래애셋투자운용의 창립자, 박헌주씨는 징기스칸의 영감으로 펀드를 키워나갔다고 한다.

 

2008년 8월 1일 (블룸버그) -- 3억7천달러상당, 샌프란시스코 시티그룹 센터 빌딩 매입협상을 마친 그는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이따금씩 포도주로 입술을 적시고는 있지만 자축의 와인은 아니었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래자산 금융 그룹.  박씨는 한국에서 가장 큰 뮤추얼 펀드를 창립한 사람이다.  한인교포들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는 엘에이에 미래자산의 지점을 세우려 했던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박씨는 미국 서브프라임의 차가움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랩탑을 앞에 펼쳐놓고 세시간동안이나 글을 쓴다.  만칠천명에 달하는 직원들에게 암울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터널의 가장 어두운 포인트를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먼안목과 전략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가져야합니다." 49세에 들어선 박씨는 그렇게 써 내려간다.

 

로스엔젤레스 계획을 무산시켜야 했던 것은 10년만에 무명에서 아시아 최고의 펀드 사업가로 변신한 박씨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후퇴였다.  2001년부터 2007년 불과 7년사이에 그가 운영한 뮤추얼펀드는 무려 700퍼센트의 투자실적을 보였다.  현재 그가 움직이는 펀드의 싸이즈는 600억 (60 빌리언)달러에 달한다.

 

그는 지금 아시아계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머징 마켓 글로벌 펀드로 성장하기 위한 확장모드에 놓여있다.

 

``비지니스는 변화에 순응하며 기회를 포착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금융계를 논할때 박헌주씨의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려대학 상대학장인 장하성교수는 말한다. "그 분은 신화"입니다.

 

신용경색의 희생자

세계적으로 퍼져가는 경기침체와 미국의 신용경색은 그에게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박씨의 대표적인 펀드들인 The Independence Equity Investment Trust, Discovery Equity Investment Trust and Insight Balanced Investment Trust 세개 모두가 금년에만도 17-26%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의 차이나 솔로몬 에퀴티 투자 신탁은 무려 30%가 넘게 손해를 보았다.

 

미래자산은 2008년 반년동안만도 72억달러를 잃고 말았다.  해외에서 잃은 돈만도 43억달러다.  이와같은 손실이 박씨의 확장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박씨는 사실상 한국에 뮤추얼펀드라는 것은 발명해 낸 인물이다. 10년전 IMF이후 정부가 자산운용사들이 유지해야할 순자본 비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준 것을 기회로 잡아 '박헌주 펀드 1' 을 만든 것이다.  첫해 그의 펀드는 삼성전자와 SK 텔레캄 같은 대형주들의 컴백에 베팅해서 95%의 투자실적을 창출해 냈었다.

 

주식펀드의 번창

주식펀드는 사실상 펀드라는 개념도 없었던 그 시대부터 시작해서 현재 1400억달러의 규모의 급성장을 이루었다.  박씨는 한국형 펀드 전체의 삼분의 일을 움직이고 있다.  그의 펀드에는 6백만이라는 한국 인구가 적금식으로 매달 입금이 들어오고 있다.

 

미래자산은 세계곳곳 240개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증권중개회사, 여섯번째로 큰 생명보험회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상하이, 홍콩, 서울등지에 24개의 빌딩을 포함한 부동산 포트폴리와 세계적 부동산 매니지먼트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부동산의 시장가치만도 100억달러에 달한다.

 

미래자산운용의 얼굴인 세개의 자회사, 글로벌 미래자산, 미래자산 증권, 미래자산 생명이 운영하는 자금은 1333억달러 (133 빌리언 달러)에 달한다.  미래자산은 주식펀드, 고정수익펀드, 머니마켓펀드, 헤지펀드, 그리고 프라이빗 에퀴티펀드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10년전 미래가 펀드회사를 차리고 난 이후로 46개의 경쟁사들이 생겼다.

 

가장 큰 펀드회사

금년 3월말, 2007년 회계연도가 끝나는 금년 3월말부러 미래자산 그룹은 43억달러의 매출에 6억달러가 넘는 순수익을 보고했는데 그것은 2006 회계연도에 비해 세배에 가까운 급성장을 보인 것이다.  Zeroin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전체 펀드산업의 36.6% 점유율로 집계된다.

 

그 싸이즈는 두번째부터 여섯번째까지의 경쟁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 큰 것으로 계산된다.

 

지난 5년간 박씨는 국내에서 외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 베이징, 홍콩, 런던, 멈바이, 싱가폴.  그 나라에서 미래는 브라질, 뤄시아, 인디아, 차이나 (BRIC) 펀드를 판매하고 있다.

 

박씨는 세계의 경제 모먼텀이 미국과 유럽선진국에서 이머징 마켓 (개발도상국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머징 마켓으로의 전환

IMF의 자료에 의하면, 네개의 BRIC 국가가 창출해내는 국내총생산은 2000년 2조5천억달러에서 2007년 7조달러. 그들의 28억인구는 세계인구 전체의 42%를 구성한다.

 

"최근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글러벌 파워가 미국에서 중국과 인디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는 단기적 파장입니다." 라고 박씨는 말한다.

 

군인 머리를 한 박씨는 2008년이 넘기전에 뉴욕과 상파올로 지사가 오픈되며 내년에는 시드니와 도쿄 지사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뉴욕에서는 미국인들에게 아시아 인덱스 펀드를 소개하고 브라질에서는 부동산을 사들여 부동산 매니지먼트회사를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펀드산업에서 아시아 상표를 떠올린다면 누가 생각이 납니까?  아직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요."

 

박씨의 글로벌 확장은 13세기 유럽과 아시아를 정벌한 징기스칸의 모델과 흡사하다. 미래와 몽고의 무사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 어느나라 사람이건 능력있는 사람을 모으고 권위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연합세력

"한국인으로만은 글로벌 확장이 불가능하죠" 박씨는 계속한다.  "우리는 연합세력을 키워야합니다."

 

몽고인들은 150년간 2억의 인구가 사는 땅을 평정했었다.  징기스칸의 무사들은 불과 10만명 안팎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각 지역의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정치를 해 줬어야 했다.

 

박씨가 즐기는 책중에 하나는 짐콜린스 저자가 쓴 "Good to Great" (좋은 것에서 위대한 것으로) 이라는 책이다.  한국의 현대 자동차가 차시장에서 성공했던 것과 삼성전자가 전자산업에서 자리매김을 한 것처럼 미래자산도 해 낼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박씨의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것" 이라는 책에 써 있는데로 그의 진입방법은 세갈래다:  1.투자대상을 이해하라  2.장기적으로 투자하고  3.남을 따라하지 말라

 

 

새돈이 몰려온다.

금년상반기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은 뮤추얼 펀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국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금년상반기동안 한국의 펀드회사들은 25 빌리언 (250억)달러의 순투자액을 유입받았다. 미래는 그중 절반에 가까운 11빌리언달러를 주식펀드로 받은 것으로 집계됬다.

 

지난 7년간 미래의 펀드들은 경쟁사들의 펀드실적을 가볍게 눌렀는데 Independence Equity Investment Trust 는 지난 7월30일부러 총 584%의 눈부신 투자실적을 과시했다.  같은 기간 한국종합주가지수는 158%의 상승을 기록했다.

 

디스커버리 에퀴티펀드는 658% 커왔고 차이나솔로몬 펀드는 2007년 한해동안 76.9% 이익을 보였다. 그것은 차이나 인덱스보다 10%를 웃도는 실적이었다.

 

 

`월등한 주식 선별력'

90년대, 박씨가 동원 증권의 지점장으로 일할 당시 그 회사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김정태씨는 박씨와 그의 팀멤버들은 우수한 주식선별자들이라고 칭찬한다. 한 예로 미래펀드의 초기 당시에 골랐던 인터넷 서치엔진 다움통신은 2000 11월까지 6배로 뛰어올랐었다.

그들은 남들보다 몇단계나 앞으로 내다볼 줄 아는 사람들이죠라고 김씨는 말한다.

 

박씨는 동양증권 (전 동원증권)에서 11년을 브로커생활을 한 이후 1997년에 미래를 창업했다 박씨가 창업할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에게의 주식투자는 거의 도박으로 여겨져 왔었다. 데이트레이딩이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돈을 은행이나 국채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박씨는 그런 자산운영 문화를 바꾸고자 했다.

 

 

70퍼센트 페널티

불안정한 투자를 지양하기위한 방편으로 미래는 90일이내에 인출하는 투자가들에게 수익의 70퍼센트까지 페널티를 적용시킨다.  90일에서 180일사이에 인출하는 경우, 페널티는 수익의 30퍼센트로 떨어지고 그 이후엔 페널티를 적용하지 않는다.

 

1997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터졌을 당시엔, 투자가들의 투자성향을 장기투자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은 유난히 어려웠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한국원화가 폭락했을 때 시중금리는 30%로 솟아올랐고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1997년 한해만도 무려 42%나 무너져 내렸었다 한국정부는 570 (57 빌리언)달러를 IMF로 부터 지원받아 소생의 길을 열었다.

 

그 이듬해인 1998년에 정부는 자산운용회사들의 시작 자본금을 3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하향조정하므로써 박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펀드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집중적 광고

박씨의 첫번째 펀드였던 박헌주펀드는 60%가 주식이었고 나머지는 채권이었다 집중적인 광고전략에 힘입어 크로즈드엔드 펀드가 (closed-end, 폐쇄펀드)오픈한지 두시간반만에 5억원 몰려들었다 펀드는 1년만에 95%의 투자실적을 과시했다.

 

그 당시 한국은 2001년이 될때까지 Open-end 뮤추얼펀드가 허용되지 않았었다. 2001, 규제가 풀리면서 미래는 유럽과 미국처럼 오픈엔드 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첫 펀드의 성공을 발판으로 2년이 채 못된 1999년에 박씨는 이미 1.1 빌리언 달러, 그 당시의 상황에 비춰봤을 때 천문학적인 액수를 매니지하고 있었다.  1999 12, 박씨는 자회사인 미래자산 증권회사를 창업했다.

 

 

앉아서 단말기만 바라보고 있지 마세요

박씨의 증권브로커회사는 거대한 단말기 벽을 세우지 않으므로써 전통적인 증권사들과 다른점을 보였다 박씨가 투자가들에게 보낼려는 메세지는, “하루종일 앉아서 단말기만 쳐다보고 있지마십시오 투자는 전문인들에게 맡기십시오.”  그는 거래커미션을 전통적인 1%에서 0.29%로 떨어뜨려 손님들을 끌여들였다.

 

또한 박씨는 장기적 안목의 투자를 상징하기 위해 서울 헤드쿼터 로비에 바늘이 없는 시계를 걸어 놓기도 했다.

 

2001 3월은 박씨에게는 최악이었다 그의 두번째 클로즈드엔드 펀드가 44.8%의 손실을 보였다 같은 기간의 종합주가지수는 43.4% 하락했었다 인터넷 버블이 터져 세계 증시가 폭락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하이닉스 반도체 주식도 들어있었다.

 

2003년 박씨는 역사적으로 낮은 이자율에 힘입어 상승세를 탈려는 주식의 기회를 잡았다 미국의 401K 펜션플랜과 비슷한 투자방식을 도입해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매달 조금씩 적금식으로 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하는 프로그램을 오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은퇴연금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적립식 펀드투자가 매력이 있었다.  2008 4월부러 적립구좌는 6백만개로 증가했다.  2년전 2백만개에서 증가한 수치다 자산도 세배가 증가한 24.5 빌리언 달러로 집계된다 영리했던 것은 은행을 통한 적립식 입금이 장기적 투자문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엔 미래자산의 오렌지와 청색의 광고가 즐비하다 - 신문, 매거진, 빌보드, 텔레비젼, 그리고 뢔디오 광고중에 하나는 미래의 인디아 펀드를 운영하는 미스터 팬디가 소개되어 있고 차이나인디아 펀드를 운영하는 두명의 펀드매니저들도 크게 광고되어 있다.

 

 

차이나 투자

광고문구 중에, “떠오르는 차이나와 인디아 두개중 하나도 놓치지 마십시오 라고 써 있다.  “어느 나라에 투자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마십시오 전문 펀드매니저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미래의 투자가들을 염두에 둔 미래자산은 2005 3월에 자녀들의 펀드를 만들었다.  2008 6월 현재, 무려 8십만명의 어린이 이름으로 1.4빌리언 달러의 자산이 모였다 어린이들의 프로그램은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의 이름으로 구좌를 터주는 것이다.

 

미래자산은 아이들에게 투자를 가르치기 위해 주말학교를 연다 일년에 2천명의 어린이들을 상하이로 4일동안 연수를 자비로 보내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돈이 있고 없고는 어릴적부터 박씨 인생의 테마이기도 하다 전남 광주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씨는 고등학교 입학당시 아버지와 사별해야 했었다.

 

 

책벌레

박씨는 고등학교 시절 초창기에 공부에 관심을 잃고 수백권의 책만 읽기 시작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용기의 프로파일에서 마키아벨리의 어린왕자까지 학업에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어머니가 하루는 박씨를 불러놓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처럼 가난한 농부밖에 되지 못한다면서 눈물로 호소하자 박씨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돈의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아들에게 빌려주는 돈에 17%의 이자를 받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어머니는 일년치 등록금과 생활비를 일시불로 주면서 돈을 잘 운영해 보라고 하셨다.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경영대 과정중에 주식에 투자할 기회가 생겼다.  1985, 박씨는 자그만한 사무실하나를 내서 주식회사들에 대한 리서치 페이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박씨는 자신의 투자회사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주간지인 시사저널과 재벌닷컴에 따르면, 박씨의 개인 재산은 8억달러정도 된다. 

 

 

42%의 손실

박씨는 4개의 비상장 자산운용회사를 38-80% 소유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미래자산캐피탈이다 미래자산 캐피탈은 박씨가 상장한 회사의 37%를 소유하고 있다 미래자산증권사는 미래자산투자뱅킹으로 이름되었던 회사인데 그 회사의 투자실적이 2008 7월말부러 42%가 떨어진 것이다.

 

박씨는 20년의 결혼생활에 세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그의 재산은 궁극적으로 사회에 환원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2000년에 세워진 박헌주 재단은 천만달러로 시작되었다 박씨의 재단은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가난한 지역에 도서관을 만들며 지체부자유 아이들을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6년에는 미래자산의 이름으로 5천만달러 상당의 장학금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년 30명의 학생들에게 중국과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장학금을 부여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2002년에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하바드 대학에서 주관하는 9주 프로그램을 이수하기 위해 6개월동안 미국에서 영어를 공부하여 입학을 준비하는 열성을 보였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인 것이다. 

 

 

시티그룹 투자전문가 영입  

2008 6, 박씨는 인디아 태생이면서 시티그룹에서 글로벌 에퀴티 투자 전략가로 있던 Ajay Kapur, 43, 씨를 미래투자의 글로벌 투자 총책임자로 영입했다 외국인이 투자책임자로 영입된 것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미래는 향후 해외에 자체 조직을 만들고 자산매입으로 확장하게 된다.

 

“M&A를 통해서 우리는 공격적인 확장을 할 것입니다 중국에 자산운용사를 세울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미 그 절차는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뤄시아와 라틴어메리카를 커버할 회사들도 사들일 계획이 있죠 박씨는 말한다.

 

미래는 2년전부터 이미 인디아에 자체 조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스탠다드 챠터 펀드사를 인수하려다 그만둔 적이 있다 가격이 너무 쎗던 것이다.

 

박씨의 쇼핑은 매우 조심스럽다 그동안 미래가 들여다본 회사는 50개정도 되지만 실제로 사들인 회사는 한국에서 3, 조인트벤처하나 그리고 해외에서는 베트남 증권사 하나일 뿐이다.

 

 

이머징 시장의 추세

박씨는 이머징 시장의 추세를 판단하기 위해 오랜시간을 공부한다 좋은 곳이 떠오르면 박씨는 일단 최고 매니저들과 논의한다 매니저들이 투자에 뜻을 같이하는 곳의 사정을 박씨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그분의 DNA 조직은 좀 다르죠 홍콩지사장 이씨는 말한다.  “마치 자산운용 사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요.”

 

박씨는 작년에 핵발전소와 하이브리드 전기 자동차를 포함한 대체에너지에 집중투자하는 글로벌 대체 에너지 인덱스 펀드를 만들었다 그는 미래의 세계가 화석에너지를 벗어나 대체에너지로 전환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씨의 임무는 칠층 회담실에 앉아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이다 그는 볼펜을 공중에 던졌다가 빠르게 받아낸다.  “바로 이런 것과 같아요 비지니스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져야하고 기회를 포착할 줄 알아야 합니다.”